여행의 기억

홋카이도 4일차-삿포로 시내

아구리 2011. 12. 19. 23:41

홋카이도 여행의 마지막 날은 삿포로 시내 관광에 할애하기로 했습니다.

삿포로가 일본 5번째 큰 도시라곤 하지만, 인구가 180만명 정도라고 하니 부산 인구 (약 360만명)의 절반 정도 되는, 그리 크지는 않은 도시입니다. 아래 지도를 보면 꽤 넓은 것 같지만 사실 삿포로 역에서 스스키노까지는 지하철 2정거장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관광객이라면 슬슬 걸어다니면서도 돌아볼만한 거리입니다.


(출처: 삿포로 관광 정보 http://www.welcome.city.sapporo.jp/tourism/k/area/area2.html)

저녁에는 어두워 제대로 보지 못한 호스텔 모습을 이제야 보게 됩니다. 일반 집을 개조한 듯 한데, 좀 좁아서 불편한 느낌도 있지만 겉으로만 보던 일반 주택에서 자본다는 것만으로도 나름 독특한 경험입니다. 내부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좁은 공간에 화장실 샤워실 등을 정말 빡빡하게 잘 구겨넣은 모습이 감탄하게 합니다.

다누키코오지-스스키노에서 걸어올라가다 보니 마주친 시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냥 건물 사이의 길에 지붕덮힌 시장거리가 길게 걸쳐 있는 정도인 듯.

뭐 재래 시장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쇼핑 거리는 대략 예상 가능한 옷가게, 생활 용품, 음식점 등… 그래도 가끔 일본에는 “과연 이런걸 누가 사러 올까” 싶은 독특한 걸 파는 가게도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래 사진은 티벳 분위기의 홋이나 잡동사니만 모아서 파는 상점.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불가능할 듯한 이런 가게들을 서울보다 훨씬 작은 도시인 삿포로에는 종종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침 다누키코지 옆으로 원전 반대 시위대가 지나갑니다. 건전한 시민운동에 경찰은 그냥 교통정리만 해줍니다.

다누키코지를 따라 동쪽으로 두어블럭 걷다 보면 니죠오시장을 만납니다. 간판이 보이는 건물 주변과 건물 내에 여러 수산물과 건어물 상점이 있습니다. 이미 지나 온 하코다테의 아침시장과 비교하면 수수한 편이지만, 관광객임에도 아저씨들이 열심히 설명하면 게 다리 맛을 보여주십니다. 아이스박스에 담아 줄 수 있으니 사가라고 하지만, 가격도 있고 보관도 힘드니 사실 그림의 떡이지요. 해산물 식당도 있으니 요기를 하기에도 좋습니다.

이제 북으로 걷다 보면 동서로 길게 걸쳐있는 오오도오리 (큰 길이란 뜻이지만 사실 긴 공원입니다)를 만납니다. 사실 삿포로는 홋카이도를 일본 영토로 활실하게 찜하기 위해 거점으로 삼은 계획도시라서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이 잘 이루어져 있고, 주소도 오오도오리를 중심으로 남북, 동서로 붙어 있어 남x서x 라는 위치만 알아도 어디든 쉽게 찾아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오도오리는 2월에 삿포로 눈축제가 열리는 곳이라고 하는데, 아직 축제 전이지만 슬슬 공원에 연말 장식이 설치되고 있었습니다.

오오도오리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TV타워. 사실 높이도 그다지 높아보이지 않고, 명물이라고 하기엔 뭔가 수수한 느낌이 있습니다. 뭐 그렇다곤 해도 JR타워와 함께 삿포로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하니 무려 700엔의 입장료를 내고 올라가 봅니다. (중간까지는 무료이고, 타워 꼭대기로 가는 엘리베이터는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꼭대기에서는 동서남북 삿포로 시내를 둘러 볼 수 있습니다만, 제 감상으로는 시간/돈이 부족하신 분들은 패스하셔도 될 듯.

TV 타워 위에서 바라본 오오도오리 공원 (축제 전이라 썰렁) 삿포로 역이 있는 JR타워입니다.

한 두 정거장이라도 타고다녀볼까 싶어 구입한 1일권. 그날은 마침 휴일이라서 500엔짜리 도니치카 카드를 살 수 있습니다. (토, 일, 공휴일 한정 지하철 1일권. 보통은 800엔쯤) 근데 정말 삿포로 비루엔처럼 좀 멀리 가실 것 아니면 그다지 쓸 일 없으니 500엔도 아끼시길 바랍니다.

TV 타워에서 지하철 타고 2정거장인 삿포로 팩토리. 옛날 삿포로 맥주 공장을  복합 쇼핑 센터로 개조한 건데, 이런 컨셉은 이제 질릴때도 된 터라 대충 훓어 보고 삿포로 맥주 시음장을 찾아갑니다.

시음장이라곤 해도 하프 파인트 쯤 되는 잔에 250엔을 내고 마시는 것이니 그리 저렴한 것도 아니고 이제 여기에 공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만 그래도 오래 걸었으니 싱싱한 맥주로 목을 축인다는 의미 정도지요..

사실 비록 이제는 복합 쇼핑몰이지만 굉장히 좋은 쇼핑몰입니다. 건물 자체도 공장의 느낌을 살리면서 잘 개조했고, 유리공에 같은 것을 애들이 체험해 볼 수 도 있으며, 개인 예술가들의 가게도 있습니다. 아마도 삿포로에서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산다면 삿포로 팩토리 내와 삿포로 역 주변 (백화점, LOFT, 비꾸카메라 등이 모여 있음) 정도가 제일 쉬울 것 같습니다. 삿포로에도 도큐핸즈가 있지만 홀로 떨어져 있어 선택의 폭이 적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쇼핑은 저녁에 할일 없을 때를 위해 남겨 놓는 것이 좋습니다.

이제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삿포로 역입니다. 공항에서 오고 가거나 다른 도시를 갈 때도 거쳐갈 곳이겠죠. 제가 느끼기에 삿포로 역 주면은 가장 일반적인 쇼핑의 중심, 삿포로 팩토리는 좀 더 작고 부티크 가게 위주, 스스키노는 유흥가, 뭐 대략 이정도로 정리됩니다.

 

삿포로 역에는 식당가도 매우 훌륭합니다. 끼니때가 되어 쇼핑센터 7층이던가... 전망 좋은 창가에서 식사. 역시 지나가다 추천 메뉴라길래 1600엔짜리 세트 메뉴를 시켰는데, 해산물, 튀김, 장어 연어알, 게살 셀러드 등이 조금씩 나온 도시락 같은 세트. 이게 밑에 밥이 깔려 있어 보기보다 양이 무척 많아 결국 밥은 남기고 위의 음식만 걷어 먹었네요.

삿포로 시내는 금방 돌아 볼 수 있습니다. 삿포로 역에서 조금만 내려 오면 시청, 시계탑 등을 볼 수 있습니다.

홋카이도청 구 본청사. 뭐 건물은 그냥 고풍스런 붉은 벽돌 건물에, 관광지면서 입장료도 없고 그나마 늦게까지도 열기에 의무감에 방문. 사실 건물 자체보다 내부에 여러 전시물이 눈길을 끄는 곳인데, 이곳을 보다 보면 일본인들이 사할린에 대하여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노골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한국인으로서는 다소 불편한 감정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구 시청에서 오오도오리 쪽으로 조금 걸어오다 보면 다른 관광지인 시계탑 (도케이다이). 한번도 멈춘적이 없다고 하지만 도시의 상징적인 존재 정도 인 것 같습니다.

오오도오리 공원에서 밤에 빛나는 TV타워는 다소 허전한 공원에 눈길을 끕니다.

자, 이제 해도 일찍 지는 삿포로의 밤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일단은 8시까지 상점가에서 아이쇼핑이던 선물을 사기로 합니다. 삿포로 역 주변에는 비꾸 카메라 같은 전자 제품이나 LOFT 같은 문구 잡화, 유니클로나 로컬 브랜드, 원하면 옆의 백화점에 갈 수도 있기 때문에 눈요기 하기에도 편리합니다. 저는 일단 비꾸 카메라에서 최근 핫(hot)한 일본 전자 제품이 뭐가 있는지 스캔해 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일본 전자 제품의 매력이 확실이 많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다지 무리해서 사고 싶은 아이템이 많지 않더군요. 오죽하면 TV 매장에서 체험해보니 LG TV의 3D가 일본 제품보다 훨씬 낫게 느껴지기까지 하네요. 최근에는 한국 제품의 기술에 큰 불만이 없고, 웬만한 전자기기는 수입이 잘 되고 있는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올라오다 보니 보이는 오락실. 일본도 아케이드 게임의 열풍은 많이 줄었는지 태고의 달인 같이 북치는 게임 외에 대부분은 뽑기 류의 게임입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온갖 종류의 뽑기가 있어, 그다지 뽑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은 초코볼, 육포,생활용품 까지 뽑기 기계에서 준비해 놓고 있네요. 그냥 100엔 샵에서 직접 사는게 더 쌀 것 같은데 말이죠.

  

결국 쇼핑은 LOFT에서 간단한 문구류와 크리스마스 카드 따위를 사는 것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확실히 이런 종류는 한국에서 보건 것과는 색다른 것이 많아서 고르는 맛이 있습니다.

하루의 마지막은 스스키노 구석의 작은 맥주집에서 맥주 한잔으로 마무리. 좁은 바 형태의 술집은 역시 사람 간의 간격이 좁아서 그런지 옆사람에게 신경이 쓰이는 모양입니다. 한국 사람이 왔다고 신기해서 이것 저것 일본어 한자 영어 손짓 다 동원해서 말 붙여 주는 주인 아저씨와 옆자리 손님들에게서 그래도 지방 도시의 훈훈함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에 대하여 나쁜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물어보기도 하는데, 저도 혼네를 보일 수는 없으니 “사람 나름이다”는 식의 적당한 답변을 하게 되네요.

늦게 호스텔에 돌아오니 여기도 주인과 투숙객이 모여 술판이 벌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밤 주인이 나베 파티를 한다고 했었는데 잊어버렸네요. 제가 왔을 때엔 이미 나베는 온데간데 없고 맥주에 엄청난 수다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여느 호스텔과는 달리 여기는 대부분이  일본 사람들이니, 이 사람들 수다 떠는 데에는 낄 엄두도 못내겠습니다. 다행히 호스텔에서 일하는 사람이 잠시 워킹 홀리데이로 일하는 한국인이라 이것 저것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삿포로를 관광지로서 평가해 보자면, 사실 그다지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고 하기엔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마치 누가 나에게 “대전에 놀러가면 뭐하지?” 라고 물어보는 느낌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삿포로는 홋카이도에 놀러 온 사람이 일본 도시의 쇼핑이나 식도락을 최소한의 형태로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고 봅니다. (뭐 유명한 체인 브랜드들은 삿포로에도 다 분점이 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홋카이도 한정의 음식이나 중소 도시의 한적함, 인심을 느껴 볼 수 있는 점이 나름의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