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억

홋카이도 2일차-하코다테 (函館)

아구리 2011. 12. 15. 16:44

차일 피일 미루다 더 잊어버리기 전에 여행기 써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분발.

2011년 11월 21일, 노보리베츠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난 아침, 보슬보슬 내리던 비는 어느덧 눈으로 변해 눈덮힌 노보리베츠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2011 연말의 첫눈은 이렇게 일본에서 보게 되네요.

 

조금 늦게 일어났더니 하코다테행 열차 시간이 다 되어 가는지라 타키모토 인에서의 조식은 대충 집어먹고  (어차피 부페식인데 이미 사람들이 대부분 먹어치워 그다지 남은 것도 많지 않았음) 급하게 버스터미널로 뛰었습니다. 미리 버스시간을 확인해 두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사실 하코다테행 열차는 거의 매시간 있는 느낌이고, JR 홋카이도 패스의 경우 어차피 추가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저는 1시간 쯤 일찍 가서 미리 끊은 지정석 티켓을 취소하고 더 이른 시간의 지정석 티켓으로 변경했습니다. 제가 탔던 열차는 이런 느낌. 철도원 아저씨들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전체적으로 무언가 절도가 있고 단정하달까 하는 개인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코다테 역에서 내리자마자 맞아주는 벽화. “어제의 적은 내일의 친구”라는 주제로, 하코다테의 개항 시기 역사를 대변해 주는 듯 합니다. 언젠가의 쇄국이냐 매국이냐 이런 논쟁을 떠울리게 합니다.

 

내리자 마자 다시 눈이 쏟아집니다. “11월인데 너무 이른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하며 한 10분쯤 걸어 호텔에 체크인. 우옷, 이 호텔은 제법 현대적입니다. 별 4개 쯤 되는 호텔의 청결함과 세련됨이 있네요. 역시 싱글 비용인데 방은 트윈 베드. 웬지 남은 공간이 서글퍼집니다. 흑. 욕실도 제대로 되어있고, 입욕제까지 있으니 나름 감동. 그러나 이 호텔에는 온천이나 사우나가 없다는거...

얼른 짐 놓고 밥먹으러 나왔습니다. 일단 눈때문에 방향/거리 감각이 떨어져서 명물인 노선열차에 탑승. 눈때문에 자주 이용할 것 같아 1일권(500엔)을 구입했으나, 사실 하코다테의 대부분은 걸어서 다닐만한 거리에 있었습니다. 열차는 역시 맨 앞에 앉아서 구경하는게 제맛이죠.

  

하코다테에는 역시 항구의 낭만이 있습니다. 사실 사진은 낭만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엄청 춥고 청승맞았다는 사실...

방향 감각 없이 조금 헤메다 추위에 동네 가게에 들러 야키소바로 요기를 하고 천천히 지도를 보며 방향 감각을 찾았습니다. 날씨로 보건데 하코다테산이나 고료가쿠 등 까지 이동하는 것은 영양가 없을 것 같고, 개항의 흔적이 남은 모토마치(元町)와 베이에리어 위주로 돌아보기로 결정.

모토마치는 하코다테 항에서 하코다테 산으로 가는 언덕에 위치한 마을로, 이곳에 개항 때 들어온 신문물과 종교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곳 거리는 마치 유럽과 같이 돌러 덮여 있는 곳이 많으며, 러시아 정교회, 카톨릭, 개신교 등의 다양한 종교 사원이 모여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한국 같았으면 개신교와 불교 사원이 나란히 있으면 매일 같이 싸우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또한 여러 나라의 영사관과 하코다테 공회당 등이 유럽풍 양식으로 들어서 있는데, 건물의 대략적인 분위기를 표현하자면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 같은데 나오는 배경이 대략적으로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하코다테에 가는 사람들은 모토마치에서 하코다테항을 내려다 보는 비탈길 (비탈길이 번지에 따라 여러개가 있는데, 하치만자카, 모토이자카 등이 제일 유명)하지만, 날은 저물고 눈이 내리니 야경은 물건너 갔다 하겠습니다. 위도가 높은 탓인지 11월인데 4시면 이미 사진처럼 어둑해지고, 5시면 완전히 어두워지니, 일찍 돌아다니시길 권합니다.

마지막으로 모토마치에서 항구 쪽으로 내려와 해안을 따라 구성된 베이에리어의 빨간 벽돌 창고 (赤レンガ倉庫, 아카렌가소우코)로 이동. 역시 항구의 낭만은 바닷가! 사실 이 빨간 벽돌 창고는 그냥 물류 창고였는데, 레노베이션 하여 세련된 상점가로 바꾼 거라네요. 마치 샌프란시스코의 피셔맨스 워프 같은 컨셉인 셈인데, 주는 느낌은 사뭇 다릅니다.

베이에리어 바닷가 제일보 기념비. 최초로 하코다테에 내딛은 곳이라는데, 곰인지 뭔지.

베이에리어의 마켓. 여기서 간식거리와 하프보틀 와인을 구입해 봤습니다.

사실 매우 세련되게 꾸며진 곳이지만 눈 앞에는 장사 없네요. 벽돌 창고마다 다양한 가게들이 있지만 쇼핑은 패스. 저녁은 수산시장에서 직접 운영하는 회전 초밥집에서. 근데 입맛이 저렴해서 그런지 그다지 감동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코다테 비어에서 마무리를 하려 했으나 아쉽게도 당일 휴점 중.

   

해서 도중에 구입한 하코다테 화이트 와인으로 하루를 마무리 합니다. 근데 저렴한 와인도 대충 잘 마시는 제 입에도 그다지 맛은 없더라구요.

하코다테에서의 하루도 빠르게 지나갑니다. 눈 때문에 놓친 부분도 많았지만, 여행이 무슨 미션도 아니고 올 클리어 퀘스트 완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쉬운 대로 남겨 두면 다음에 다시 올 핑계가 될 수도 있을테니까요. 뜨뜻한 물에 입욕제 넣고 목욕하면서 내일은 일찍 일어나 하코다테 수산 시장에 가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