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억

홋카이도 1일차 - 노보리베츠 (登別)

아구리 2011. 12. 14. 22:17

 

드디어 출발. 이노무 홋카이도행 이스타 항공은 8시 20분 비행기라 정말 새벽같이 집에서 나서야 했습니다. 탑승 게이트도 가장 구석에 비행기도 국내선 정도의 크기라서, 아일랜드에서 영국 갈때 경험했던 Aer Lingus (워낙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무중력 상태를 경험한다고 현지인들은 vomit-comet 이라고 부른다는) 를 떠올렸지만 뭐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네요. 기내식도 없지만 3시간 남짓 비행이니 참을만 합니다. 다만 비행기 내부에 좀 아동스러운 캐릭터들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지만, 저렴한 가격이 모든 것을 용서하게 해 줍니다. 또 너무 이른 시간이라 면세점을 둘러보거나 라운지에서 노닥거리는 호사를 누리지는 못하겠네요.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열심히 JR철도 창구로 직행. 먼저 JR 홋카이도 레일 패스를 사야 합니다. 한국에서 살수도 있지만 급하게 여행사 방문하거나 택배 받기도 번거로와 일본에서 사기로 했습니다. 외국인 창구가 있어 줄도 서지 않아도 되고, 창구 여직원께서 한국어도 잘하시더군요. 여기서 레일 패스를 사고, 노보리베츠까지 가는 기차의 지정석 티켓도 받습니다. (열차는 자유석과 지정석이 있는데, 지정석은 추가 요금이 있지만 JR 홋카이도 레일 패스의 경우에는 추가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고, 열차 시간도 확인할 겸 무조건 지정석을 요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차피 삿포로로 곧장 가더라도 1000엔이 넘는 차비가 들게 되어 있으니 시간도 절약하고 비용도 아낄 겸 동선을 곧장 노보리베츠로 잡았습니다.

노보리베츠로 가기 위해서는 신치토세 역에서 1정거장인 미나미치토세역(南千歳)에서 갈아타야 합니다. 우선 신치토세 역에서 열차 탑승.

미나미치토세 역까지는 1정거장이라 몇 분 걸리지 않습니다. 철도역 분위기는 한국의 1호선 국철과 비슷한 분위기. 여기서 한 20분쯤 기다리니 노보리베츠를 거쳐 하코다테 방향으로 가는 열차가 옵니다.

지정석 열차 안은 꽤 쾌적합니다. 의자에 자신의 지정석 차표를 꼽아두어야 하지만, 뭐 굳이 꼽아두지 않더라도 승무원이 요청할 때 보여줘도 상관 없습니다.

 

즐거운 열차 여행. 창밖에는 일본 주택들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일본 주택들은 나무나 판넬로 마치 조립식 주택같은 느낌을 줍니다. 대게 2층이고, 또 창문이나 지붕 등의 구성이 마치 빅토리아 양식의 주택을 떠올리는 모양이 제법 많더군요.

오래지 않아 노보리베츠 역 도착. 한 30분 남짓 걸린듯 합니다. 참 오래된 낡은 역이지만 나름 운치가 느껴집니다.

노보리베츠의 마스코트인 도깨비. 어딜가도 이런 도깨비를 볼 수 있습니다.

 

역 내부. 작은 시골역에 수수한 분위기지만 열차 안내 화면 만은 첨단 LCD 모니터. 역에서 내리면 현지 관광 안내 브로셔를 가져가는 것을 잊지 맙시다. 한국어로 된 것도 있네요.

 

역 앞에서 관광객을 맞이하는 노보리베츠의 도깨비

이제 노보리베츠역에서 노보리베츠 온천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역 앞에는 택시 승강장과 버스 정류장이 있습니다. 일단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노보리베츠 온천으로 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대략 1시간에 두어대 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버스 앞에 한자로 적혀 있고, 노보리베츠 한자인 登別에 온천이란 한자를 읽을 수 있다면 큰 무리 없습니다.
일단 버스는 뒤에서 타면서 세-리켄(整理券, 정리권)을 뽑습니다. 그러면 사진처럼 번호가 찍혀 있습니다. 제 번호는 29번이네요.

 

버스의 앞에는 번호별로 요금이 있습니다. 재 번호인 29번은 160엔이네요. 세리켄을 뽑자 마자는 기본 요금이고, 버스가 계속 가면서 요금이 올라갑니다. 내릴 때는 앞으로 내리면서 기계에 넣고 세리켄 번호에 맞는 요금을 함께 내면 되고, 거스름돈도 줍니다. 노보리베츠 온천까지는 330엔 정도 나온 것 같습니다.

자, 이제 노보리베츠 숙소에 체크인. 저는 그냥 jalan.net에서 만만하게 보인 타키모토 인 (滝本イン)에 즉흥적으로 예약을 했기 때문에 버스 정류장에서 조금 걸어 올라갑니다. 아래 노보리베츠 지도 (버스정류장에서 나눠주는 한글 브로셔입니다)에 보자면, 맨 밑 버스터미널에 내려서 6번으로 이동하는 것이 되겠네요.

노보리베츠 지도

일단 체크인 한 느낌은 이 정도.

 

실제 작은 트윈 베드룸이었는데, 방은 작진 않고 깨끗했으나 한국 여관 분위기의 구식 느낌. 그리고 간신히 샤워와 용변이 가능할 까 싶은 작은 욕실. 그런데 사실 저한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타키모토 인과 옆의 제일 타키모토관은 노보리베츠에서 가장 오래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곳이라더군요. 욕실도 별 불편이 없는 이유는 온천 사우나가 있기 때문이지요. 이는 뒤에서 설명.

대충 짐만 놓고 놓친 점심도 먹을 겸 동네 구경에 나섭니다. 3시쯤 점심 때가 지나니 많지도 않은 식당 대부분이 쉬는 시간입니다. 간신히 오래된 라멘집에서 지옥 라면을 대충 먹고, 유명한 지옥 계곡 탐험 시작. 그런데 이런, 찔끔찔끔 비가 오다니. 호텔의 우산을 집고서 출발.

입구부터 도깨비가 지키고 있고, 멀지 않은 곳에 지옥 계곡이 보입니다만, 벌써부터 은근한 유황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지옥 계곡은 말 그대로 유황과 석회 성분이 온천과 만나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입니다. 사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이곳을 지옥이라고 호들갑 떠는 느낌도 있지만, 옛날 사람들에게는 정말 마치 “지옥이 있다면 이런 형상일까" 싶은 느낌을 주지 않았을까 싶네요. 혹시 만화 “이누야샤”를 본 적이 있다면, 이누야샤에서 표현하는 저승이 아마 이런 곳을 모티브로 묘사하지 않았까 싶기도 합니다.

  

지옥 계곡을 지나, 산길을 가볍게 트래킹 하는 기분으로 더 올라가면 오유누마라는 온천 늪(?)이 보입니다.

오유누마는 추운 날씨에도 보글 보글 끓고 있어서 온도가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유황 냄새와 참 칙칙한 색 때문에 물을 건드려볼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Smile 

가는 길에는 인적도 드문데 수많은 까마귀떼들로 더 을씨년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일본 만화나 게임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마치 최종 보스 출현 직전의 분위기 정도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지 않을까 싶네요.

자 대략 지도의 전체 코스를 산책하는데 2~3시간 정도 소요된 것 같습니다. 사실 노보리베츠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저녁 시간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상황 상 저녁 시간 사진이 별로 없네요.

우선, 산책 후 호텔 가격에 포함된 저녁 식사. 호텔이 허름하다고 식사도 대충 줄거라 걱정했습니다만, 실제 먹은 저녁은 감동 그 자체. 일단 체크인 할 때 저녁이 포함되어 있으면 몇시에 저녁을 먹을 것인지 (2타임이 있었습니다) 알려주고, 그 시간에 레스토랑에 가면 좌석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제 체크인 할 때 받은 식권을 제시하면 됩니다. 사실 오래된 (여관에 가까운) 호텔이라 레스토랑도 그리 밝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나오는 음식은 여행 중 먹은 식사 중 가장 좋았습니다. 밥과 국, 회, 튀김, 구운 생선 등의 일본식 식단에다 1인용 냄비에 불고기 종류의 고기도 구워줍니다. 첫날 부터 느끼는 이 포만감!

행복한 느낌을 가지고 소화도 시킬 겸 밑으로 상정가를 걸어봅니다. 기념품 가게나 편의점들이 있었지만, 사실 그다지 매력적인 기념품은 찾지 못했네요. 대신 편의점에서 북해도 한정 삿포로 캔과, 낙농업으로 유명한 곳이니 푸딩 따위의 간식 거리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자, 이제는 온천 여행의 하일라이트, 온천 목욕입니다. 사실 가서야 안 사실이지만, 타키모토 인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옆 다이이치타키모토관의 대욕탕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다이이치타키모토관은 매우 현대적인 호텔이고 가격도 제법 비싼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의 사우나가 대단히 크고 쾌적합니다. (투숙객이 아닌 경우 일정 금액을 내고 올 수 있지만, 저녁 늦은 시간에는 불가능합니다) 물론 한국의 워터파크에 비하면야 매우 작은 수준이지만, 나름 자쿠지나 다양한 온천탕이 구비되어 있고, 료칸 수준은 아니지만 나름 간단한 노천탕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사우나에서는 지옥 계곡을 내려다 볼수 있는 큰 창이 마련되어 있어, 실내지만 제법 즐거운 온천욕이 가능합니다. 보통은 맨몸에 방에 있는 유타카 (잠옷 가운 같은 옷)을 입고 옵니다만, 저는 유타카가 익숙치 않으니 패스.

저는 일정 다 마치고 저녁 10시쯤 갔습니다. (참고로 노천탕은 12시까지만 열립니다) 그리고 남여가 구분되어 있습니다만, 사우나가 아닌 노천탕 쪽은 수영복을 입고 가는 것이 원칙이라고 합니다. (없으면 대여도 가능합니다.) 저는 수영복을 방에서 가져오지 않아 잠깐 고민했는데, 눈치를 보니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일본인들도 대충 수영복 없이 여기저기 다니더군요. Smile  사람이 붐비지도 않는 고요한 온천탕에서 쉬는 것이 노보리베츠에서의 백미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늦은 시간이라 투숙객만 오는 시간이라는 점도 있었겠지요. 11월이지만 나름 추운 겨울에 눈을 맞으며 노천 온천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개운한 마음으로 취침. 이렇게 하루는 금방 갑니다. 전체적인 노보리베츠를 평가하자면, 지옥 계곡과 온천욕으로 하루를 할애하기엔 다소 아쉬운 듯 한 느낌도 있지만, 일본 시골 동네에서 하루 쉰다는 기분으로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음 번에는 다른 온천 동네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해 주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