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고 놀기

가지고 다니는 핸드 스캐너 TRIONE Neo7

아구리 2012. 2. 17. 22:43

8비트 컴퓨터 세대인 저는, 어릴적 갖기 어려웠던 여러가지 주변 장치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 뭐 일일히 열거하자면 수도 없겠지만, MSX의 4메가팩이라던가, FM카드, 그리고 나중에는 x86의 고급 사운드 블라스터라던가 사운드캔버스 같은 MIDI 장치 등등. 8비트 컴퓨터를 사용하던 고등학교 때 친구가 거금을 털어 열전사 방식의 프린터 (요즘 영수증처럼 열전사지를 사용해서 프린트하는 방식. 요즘은 영수증보다 큰 인쇄물에는 사용하지 않고, 일부 휴대용 포토 프린터 정도에서 사용)를 구입한 것을 보고 엄청 부러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프린터와 함께 영상물 매니아들의 감성을 자극했던 것이 바로 스캐너. 이것만 있으면 온갖 잡지에 나오는 멋진 영상들을 스캔해서 보관할 수 있을 것 같았죠. 10년 쯤 전이라면 가격때문에 망설여졌던 스캐너, 2012년 현재로서는 사실 가격적인 부담보다는, 큰 부피에 써봐야 얼마나 쓰겠냐는 이유로 뭔가 흥미가 떨어져 버린게 아닌가 싶은데, 예전의 열정이 그리우면서도 서글퍼 지는 듯 합니다.

그래도 스캐너가 종종 아쉬울 때가 있죠. 특히나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잡지라던가 책을 보다가 맘에 드는 구절이나 사진이 있으면 스크랩시켜 놓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때 보통 사용하게 되는 것이 휴대폰 카메라.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는 보통 500만화소를 넘으니 잘만 찍으면 퀄리티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 종종 신경 쓰이는 이유는,
  • 책이 구부러져 있어 평평하게 찍기 어렵다 - 구부러진 사진이 나온다.
  • 컬러 화보일수록 광택이 있어 조명이 비친다 - 조명으로 중간에 허연 멍이 든 사진이 많다
이런 이유로 대략 그때의 이미지를 기억하기 위한 정도로 사용하곤 합니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싶죠.
문득문득 "휴대용 스캐너가 있으면 스크랩하기 좋을텐데" 라고 생각하던 차에, 구정 연휴 기간 모 쇼핑 사이트의 광고 메일에서 발견한 핸드 스캐너. 그것도 구정 특집으로 할인된 가격!
오... 휴대 간편, PC 없이도 동작, 컬러로 600DPI라니.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결재 완료.



다음 사이트에서 아직도 팔고 있지만 가격은 다시 원상 복귀된 상태네요.
1300k의 상품 정보

정신 차려 보니, 사실 이거 듣도보도 못한 회사에 검증되지 않은 제품이라 불안감 엄습. 그래서 구글링을 좀 해보니 이미 유사 제품이 Amazon 등에서 판매되고 있더군요. 가장 유명한 제품은 VuPoint의 Magic Wand (번역하자면 마법의 지팡이?) 

http://www.vupointsolutions.com/

그런데 사실 로고를 제외하고는 Neo7과 VuPoint의 Magic Wand 중 기본 모델과 모든 사양과 디테일이 동일해 보였습니다. 아무리 봐도 동일 제품. 실제 물건을 받아봐도 Made in China 인지라 같은 OEM 상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로 해당 페이지에서는 블루투스, 와이파이 지원 모델 등 다양한 핸드 스캐너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와이파이 모델이 욕심나지만 Neo7의 저렴한 가격이 모든 것을 용서해 주는지라 일단 패스.
http://www.vupointsolutions.com/comparison_chart/index.html 

뭐 일단 여러군데서 판매되고 있는 모델이고, 특별 가격 79000원이라면 나의 호기심을 위해 감당해 줄 만한 수준이라 생각되어 결재 취소하지 않고 배송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드디어 도착.

 
뭐 참 저렴해 보이는 패키지. 그러나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개봉. 안에는 스캐너, USB 케이블, 건전지, 휴대용 파우지 (이건 꽤 친절한 배려라고 생각), 그리고 소프트웨어 CD (간단한 OCR 소프트웨어)와 청소용 천, 화이트 밸런스 보정용 흰 종이가 들어 있습니다.

일단 내용물에 대하여 평가해 보자면, MicroSD (메모리)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CD에 들어있는 OCR 소프트웨어는 ABBY Screenshot Reader라는 것인데, 검색해 보니 홈페이지에 설명이 올라와 있네요.

ABBY Screenshot Reader 설명 (영문)

ABBY 사에 여러 OCR 소프트웨어가 올라와 있고, 이 Screenshot Reader 라는 것은 화면 캡처한 내용을 텍스트로 변환해 주는 기본적인 프로그램인 듯 합니다. 어차피 책 대량으로 스캔할 것 아니면 OCR이 얼마나 번거로운 작업인지 알고 있는 본인은 OCR에 대한 기대가 없으므로 패스. 어쩌면 VuPoint 는 좀 더 비싸지만 더 제대로 된 OCR 소프트웨어를 번들해 주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동봉된 건전지와 가지고 있던 2GB MicroSD를 투입. 조작은 엄청 간단하고 흑백/컬러 설정, DPI(300/600) 설정, 스캔/파워 버튼, 이렇게 3가지 밖에 없으니 어려울 것은 없습니다. 자세한 제품 사진은 쇼핑몰 상품 소개에 있으니 참고하시고...
우선 가지고 있던 책을 꺼내 스캔을 시도해 봅니다. 우선 원본은 이것. 사진을 찍으면 아무래도 기울어지고 책 접힌 면이 구부러지게 되어 있지요.



이것을 스캔해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제법 괜찮긴 하지만, 우측에 좀 흐려진 부분과 아래 회색 얼룩이 졌습니다. 이건 스캔하면서 미는 속도를 잘 맞추지 못하거나 책이 공중에 떠서 스캐너에 밀착되지 않을 때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말 꾹 눌러서 정성껏 속도를 조절하며 미는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뭐 그래도 일단 사진의 품질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스캔한 사진의 일부를 100% 크기로 한번 보겠습니다. 참고로 스캔 설정은 600DPI/컬러 입니다. A4를 스캔하면 JPG로 저장되고 약 3MB 정도가 되는군요.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확대 사진. 아... 잠시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 컬러 인쇄물을 스캔하면 저렇게 거친 모습이 나옵니다. 이는 스캐너의 잘못은 아니고, 인쇄물의 특성인데, 보통은 사람이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확대하지 않으면 잘 모르지만 스캐닝하면 두드러지게 되지요. 단순히 스크랩용 이미지로 적당히 resize 해서 쓰면 별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고, 거슬리면 포토샵의 despeckle 같은 필터를 돌려 주면 좋아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후보정까지 해서 정성스레 쓸 생각은 없으므로 대략 리사이즈 한 정도로 만족하려 합니다.

스캔한 이미지 하나 더 - 역시 600DPI, 컬러입니다. 원본은 이것.


이것을 스캔하면,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지를 확대하면 이렇습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뭐 제가 전문적인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스캔한 질에 대해서는 대략 실망스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언제라도 편리하게 스캔" 이라는 기본적인 전제를 충족 하는 한은 말이죠.

그런데 사실 이 "언제라도 편리하게" 라는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일단 책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평평하게 스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장점일진데, 일단 책이 굽게 되면 일정한 속도로 수평/수직으로 미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문제점은, 책을 찟지 않고 스캔하려면 스캐너가 책 모서리에 가깝게 붙어야 짤리는 부분이 없을텐데, 결정적으로 양 옆에 스캔이 안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죠. 아래 사진을 보면 이해가 되시려나?

이건 그래도 쉽게 피해 갈 수 있습니다. 책을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스캔해 버리는 거죠. 이러면 A4의 경우 위나 아래 스캔이 안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겠지만, 뭐 어차피 전 사진 위주로 스캔할 생각이니 전체 스캔은 잘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스캔하면 나중에 90도 회전시켜 줘야 하는 귀찮음이 있겠네요.
 
일단 며칠 사용해 본 개인적인 총평

장점
  1. 가볍고, 들고다니기 편하다
  2. PC 같은 부대 장치가 필요 없다.
  3. 스캔 질도 그럭저럭 쓸만하다
  4. USB 케이블로 연결하면 외장형 메모리로, 아니면 MicroSD를 빼서 꼽으면 이미지 전송 끝 
단점 
  1. 제대로 스캔하려면 은근히 신경써야 한다
  2. 양 끝의 스캔 사각지대가 은근 불편하다
  3. 크기가 크진 않지만 다소 길어서 평소에 주머니에 넣어 다닐 순 없겠다
  4. 껐다 켜면 컬러/DPI 설정이 초기화되는 등의 사소한 귀찮음이 있다
뭐 저렴한 가격에 장난감 샀다고 생각하면 그리 나쁘진 않지만, 좀 더 비싼 가격이라면 고민 될만한 놈입니다. 스크랩 할 일이 많거나, 집에 스캐너가 하나도 없다면 그럭저럭 자리도 차지하지 않고 유용하게 사용될 법 한 녀석이지만, 이것 저것 들고다니는 걸 귀찮아 하는 사람이라면 활용도 면에서 그냥 지금처럼 휴대폰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네요. 다소 계륵과 같은 녀석이긴 하지만, 전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다 보면 종종 써먹을 일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